LATEST UPDATES

Published at 5th of November 2021 10:04:20 AM


Chapter 300: 300

If audio player doesn't work, press Stop then Play button again




카이얀이 유네시아 대륙에서 모습을 감춘 지 476일째.

그가 사라지고 난 후에 유네시아에는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 상태였다.

그 문제가 일어난 건 정확히 현재로부터 276일 전.

바로 그 날 가미안, 파니벨룬, 반티가스 세 곳 동시에서 갑작스럽게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다. 분명 아직 다음 웨이브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남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기 200일 전부터 갑작스럽게 메니슬랜에서 가르온이라는 이사벨이 이끄는 조직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가르온에서 나서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것을 각 왕국과 제국에게 경고했다.

지금까지 겪었던 몬스터 웨이브보다 더욱 강력한 웨이브가 닥칠 테니 당장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 준비하라며.

하지만 대부분의 왕국과 제국은 가르온의 말을 제대로 믿지 않았고, 결국 그 상태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다.

뒤늦게 이사벨의 말이 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라들은 급히 연합군을 모아서 몬스터들을 막아내려 했지만, 준비 기간이 짧았던 만큼 제대로 된 연합군이 결성되지 못했고, 결국 몬스터 군단에게 1차 저지선을 허무하게 내주는 패배를 겪었다.

그리고 그 패배는 현재도 꾸준히 진행되는 상황이다.

어제 1차 저지선을 밀렸다면 오늘은 그 이상을 몬스터 군단에게 내어주는 중이었다. 그렇게 결국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지 276일이 지났을 때는 벌써 가미안, 파니벨룬, 반티가스 모두 최종 저지선이라 불리는 3차 저지선까지 밀려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만약 3차 저지선까지 몬스터 군단에게 뚫리면 인간들이 멸망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각 나라의 왕과 귀족들이 그때까지도 가르온을 믿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가르온에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애초에 3차 저지선까지 연합군을 유지한 채 물러서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고 바로 오늘.

드디어 연합군을 이끄는 사령관과 지휘관들이 고집을 꺾고 가르온 조직에 통신을 시도했다.

메니슬랜의 수도 라크나샤의 중심.

웅장하며 아름답게 지어진 왕성 안에 있는 제1 회의실에서 통신구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제일 상석에 앉은 이사벨을 불렀다.

“왕녀님! 가미안 연합군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파니벨룬에서도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호크만 사령관이 이사벨 님을 직접 뵙고 싶다고 하셨답니다!”

“반티가스에서는 며칠 뒤에 일어날 전투를 도와달라며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하지만 보고를 들은 이사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예술품처럼 아름다운 얼굴로 인상을 찡그린 채 탁자를 두드렸다.

“아스티아 녀석들이 방해하는 이상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276일 만에 도움을 요청하다니. 정말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군요.”

“그, 그래도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렸다는 소리니까 다행히 아닐까 생각합니다.”

“포일 경,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세 곳을 합치면 그동안 허무하게 죽어 나간 사람이 최소 오십 만 명이 넘는 상황인데도?”

이사벨의 차가운 물음에 포일이라 불린 기사가 당황하며 황급히 고개를 수그렸다.

“아, 아닙니다. 기다리던 통신이 온 게 너무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실성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휴우… 포일 경의 잘못은 아니니 되었어요. 그보다 가미안, 파니벨룬, 반티가스에 보낼 지원군들을 당장 선별하도록 하세요. 로펀드에게 제 말을 전달하면 알 거예요.”

“옙! 지금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포일이 이사벨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밖으로 나가자, 옆에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돌프가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 이사벨 님, 설마 가르온에서 키우던 아이들을 내보내실 생각이십니까?”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당장 연합군이 무너지게 생겼는데 우선 막고 봐야죠.”

“아직 조각을… 크흠!”

말을 하던 아돌프가 주변에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어색한 기침을 뱉었다.

잠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던 그가 이사벨에게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사벨 님… 가르온 님께서 용납하시겠습니까? 아직 누가 신성 조각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

가르온 조직에서는 예전부터 각종 분야에서 재능을 뽐내는 아이들을 데려와 육성하는 기관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재원을 키워내기 위해서처럼 보였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누군가 가지고 있을 행운의 신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사벨이 그런 그들을 전쟁에 투입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러다 조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죽기라도 해 버리면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알아요. 가르온의 뜻대로라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하지만 지금 당장 연합군을 위기에서 구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어요.”

“이사벨 님….

“마탑주… 아니, 할아버지.”

이사벨이 공석에서 부르던 마탑주라는 호칭이 아니라 사석에서 부르듯이 아돌프를 불렀다.

“예, 이사벨 님.”

“대전쟁을 위해 어디까지 인간들이 희생해야 하는 걸까요.”

“예?”

“요즘 들어서 부쩍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대전쟁을 위해 지금까지 가만히 지켜보던 게 맞는 건지….

슬픈 눈을 한 채 고개를 숙이는 이사벨의 모습에 안쓰러움을 느낀 아돌프가 살짝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사벨 님, 어째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사벨 님께서 옳은 선택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설사 가르온의 뜻과 달라도…?”

불안하게 흔들리는 이사벨의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본 아돌프가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물론입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이사벨 님의 어머니이신 체르시안 님께서도 옳다고 판단되면 가르온 님과 뜻이 달라도 꿋꿋하게 일을 진행하셨었습니다. 그러니 이사벨 님께서도 그러실 수 있습니다.”

메니슬랜의 왕비 체르시안.

자신에게 자애의 신성을 물려주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린 이사벨이 두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하고 다시 눈을 뜬 이사벨의 두 눈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게 후회하지 않을 거 같아. 할아버지, 엘라인 장로님을 포함해 모두를 모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전쟁이 끝나면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이사벨과 아돌프를 제외한 가르온 조직의 영웅들은 가미안, 파니벨룬, 반티가스에 파견된 상태였다.

그들의 역할은 몬스터 웨이브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초대형 몬스터를 처리하는 것.

가르온에서 연합군조차 모르게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는 그들이 아니면 초대형 몬스터를 막을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스티아에서 수작만 부리지 않았어도 조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녀석들이 노리는 목표가 뻔한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엘라인 장로님께서 있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허허.”

원래 초대형 몬스터를 막아야 할 사왕국의 가디언을 비롯해 파니벨룬, 반티가스의 오러 마스터들은 모두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신성 왕관을 부여 받은 총사령관 세 사람도 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현재 세 곳에서 사령관을 맡고 있는 세 사람은 사라진 그들을 대신해 급히 임명된 자들이었다.

각 왕국과 제국에서는 갑자기 그들이 사라진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이사벨을 포함한 가르온에서는 그게 아스티아의 수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 애초에 그들 모두가 아스티아 소속이었으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사벨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그토록 경고했던 것이었는데.

“휴우… 바쁠 텐데 그만 가 봐요. 여긴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밤에 다른 자들을 데리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밀린 업무를 처리하러 아돌프가 떠나자, 회의실에 수십 명의 사람들과 남겨진 이사벨이 멍하니 천장을 쳐다봤다.

이사벨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머리를 아프게 하던 문제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금방 그 빈자리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카이얀 씨는 어디에 있는 걸까.”

이사벨은 아직도 정확히 그가 가르온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나갔던 이유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를 붙잡지 않고 그대로 나가게 방치한 가르온의 생각 또한.

하지만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다.

‘가르온이 생각하는 건 대전쟁뿐이라는 그의 말이 잊히지 않아. 그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눈치였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처럼 가르온을 친근하게 대하던 카이얀이 갑자기 돌변한 건 행운의 신성에 대해 이야기한 순간이다.

이사벨이 생각하기에 카이얀은 자신을 속였다는 점에서 불쾌할 수는 있어도 결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반드시 밖으로 나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는 소리다.

“하아… 통신을 해도 받질 않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레플랙사를 피해 계속 아공간에 있는 건가? 한번쯤 다시 만나 보고 싶은데… 설마 정말로 하브마임에 간 건 아니겠지?”

머릿속을 잠시 비워 내려던 행동이 이사벨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그녀는 카이얀에 대해 생각하지 않겠다는 고개를 크게 젓고는 눈앞에 있는 서류를 잡았다.

그리고 이사벨이 카이얀을 생각하던 바로 그 시각.

우웅!

메니슬랜의 수도 라크나샤가 한눈에 보이는 베몽산 정상 부근에 흐릿하게 푸른 숲이 보이는 차원의 문이 열렸다.

*

*

*

타닷.

“하아! 제대로 왔구나.”

오랜만에 유네시아 대륙의 땅을 밟자 느낌이 새로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너무나 잘 아는 곳이었다. 나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 베몽산 정상 부근.

그리고 아래로 파고 내려가면 가르온 조직의 비밀 저택이 있는 장소.

[으으! 역시 차원은 이렇게 널찍하고 안전해야 해요!]

“그 말에 동의해. 그리고 바로 이 상쾌한 공기까지!”

숨을 크게 들이쉬자 유네시아 대륙은 겨울인지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통해 흘러들어왔다.

[그런데 왜 하필 베몽산으로 오셨어요? 설마 가르온을 만나실 생각은 아니시죠?]

“그럴 리가. 그냥 여기가 제일 안전해서 이리 왔을 뿐이야. 다른 곳이라면 잠시라도 불안하니까.”

[하긴… 그럼 이제 다시 들어가시죠! 제대로 도착할 걸 확인했으니까요! 언제 녀석들이 찾아올지 몰라요.]

“그래, 그런데 그전에 통신 한 번만 하고. 물어볼 게 있어서.”

어서 아공간으로 들어가자며 재촉하는 리에카를 냅두고 허리춤에 걸린 주머니에서 통신구를 찾았다.

리에카는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궁금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누구에게 통신하시려고요? 바르안? 막스 아저씨? 린다? 마얀드? 아니면…. 알았다! 엘라인 장로님 맞죠?]

“미안하지만 틀렸어.”

[틀렸다고요? 어! 그 통신구는…]

“이사벨에게 할 거야. 그녀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제일 잘 알고 있을 사람이야.”

이 통신구는 가르온 조직에서 나오기 전 이사벨이 직접 건네줬던 통신구다.

앞으로 아돌프를 통해 자신을 찾지 말고 직접 통신해서 대화하자는 의미로. 하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통신구이기도 했다.

내가 이 통신구를 받고 나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가르온 조직을 떠나 버렸기에.

“설마 그사이에 버린 건 아니겠지?”

통신구에 미약하게 오러를 흘려 넣으니 장난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호가 몇 번이 갔음에도 상대방이 받지 않자 그 장난이 순식간에 불안감으로 변해 버렸다.

“….진짜 안 받네.”

[으음, 그럴 만하죠. 이사벨 입장에서는 가르온 조직에서 나간 카이얀 님을 좋게 볼 수는 없잖아요. 무엇보다 하브마임에서 보낸 시간을 계산하면… 엄청 시간이 흐르기도 했고요. 지금 하시는 행동은 아주 양심 없는 행동이에요.]

정곡을 찌르는 리에카의 일침에 신호만 울리는 통신구를 바라본 채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거의 500일 만에 연락하는 거니까. 그럼 아쉽지만 엘라인 장로님에게….

이사벨이 통신구를 버렸다는 생각에 통신을 포기하려는 순간.

….카이얀 씨?

통신구에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사벨의 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Please report us if you find any errors so we can fix it asap!


COMMENTS